발자크(Honoré de Balzac)의 절실함. thoughtS [삶의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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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문호 발자크(Honoré de Balzac)는 자신의 작품생활을 되돌아보면서,

"나는 굴이 무너져 갱 속에 갇혀 버린 광부가 목숨을 걸고 곡괭이를 휘두르듯 글을 썼다."고 합니다.

 

발자크의 말을 떠올리며 문득 눈을 감고 바로 그 광부가 되어 보았습니다. 

완전한 암흑이라면 그런 곳이겠죠.

땅 밑의 서슬한 공기와 이곳에서 죽을 지도 모른다는 미칠듯한 혼란이 느껴집니다.

정상적인 들숨 날숨을 할 수 없고  이내 호흡이 꼬여 버립니다.

벽에 곡괭이를 휘두르다가도 이게 옳은 방향인지 확신할 수도, 그럴 정신도 없습니다.

오히려 온전히 곡괭이를 휘두를 공간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흐르는 땀과 눈물, 콧물이 뒤범벅된 얼굴을 닦을 정신도 없이 곡괭이 질을 하겠죠.

 

 

이렇듯 주변 상황에의 절박함은 마음의 절실함으로 이어집니다.

제게 있어 절실함이란 제가 그것을 얼마나 원하는가의 다른 질문입니다.

무언가를 정말 이루고 싶은 마음이 차고, 행동으로 넘칠 때 바로 그 절실함을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죠.

그런 까닭에 살아가며 절실함이 있었던 일들은 대부분 이루어졌던 것 같습니다.

물론 모든 일들에 절실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반드시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 한번쯤 자문해 볼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것(문제/가치)에 대해 얼마나 절실해 있는지를 말이죠.

만일 절실하지 않다는 답변이 돌아온다면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 볼 수도 있겠죠.

 

때로 스스로 질문을 통해 답을 얻기 힘든 경우들이 있습니다.

과연 지금 내가 얼마나 절실해 있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내가 지금 절실한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만일 내가 절실한 순간에 있다면 그건 '과연 내가 절실한가?' 라는 의문과 '절실함이 무엇일까?' 라는 질문이 사라진 지점일 겁니다.

인지와 생각, 사고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용 대신 절실함이라는 것이 이미 행동을 통해 드러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칠듯한 곡괭이 질이 아닌, 미쳐 곡괭이 질을 하고 있는 광부처럼 말입니다.

 

이 글을 쓰며 하루를 돌아봅니다.

오늘 하루 나는 내가 이루고자 하는 일에 대해 얼마나 절실한 마음으로 살았을까요.

미칠듯한 곡괭이 질이 아닌, 미쳐 곡괭이 질을 하고 있는 광부의 절실함으로 말이죠.

 

 

 

* 음악: Celine Dion & Josh Groban - "The Pr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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